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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기 다른 관점에서의 개괄.
1) 드라마 '꺼리'로서의 실피에나
배경세계에는 그 시스템에 적합한 놀이거리를 제공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투 비중이 큰 시스템에 적합한 배경세계에서는, 그 곳에 산재된 문제들 속에 PC캐릭터들이 개입하려면 다채로운 전투적 선택지들을 받아줄 설정들이 담기는게 중요합니다.
거기에는 죽어 마땅한 이유와 계단형 파워레벨 구조를 갖춘 다양한 괴수, 악당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어야 합니다. 또한 빠워있는 영웅을 기다리며 보상을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미녀(남?)들이 있어야 겠죠. 먼치킨들의 쏘울을 불태울 온갖 강대하고 기상천외하며 신비한 금성철벽의 던젼, 요새, 유적들도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양가감정과 사회제도의 모순과 이념적 고뇌' 같은 건 결과적으로 칼부림으로 해결될 갈등의 배경이자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양념'으로 해두면 대체로 미장센도 충분하죠.
그럼 실피에나는?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뚜렷한 세력을 갖춘 전통적인 악의 세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실피에나를 양분하는 두 정부의 지도자들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나 일개 '성군'따위의(?) 개인적 수완이나 도덕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재난의 씨앗들이 곳곳에 산재해있습니다.
데이터가 있는 NPC들의 개인적인 사연들도 배경설정의 일부로서 이러한 거시적인 문제와 크고작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뭔가를 쳐없앤다고 깨끗하게 끝나지 않고, 누구 편을 들기도 찝찝한 문제들이 널려 있으며 정의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의 범위는 개인의 감정부터 사회구조적 문제까지 다채롭고 폭넓어 보입니다. (트롤이 우리 아버지다. 터프한 브라콘 여동생이 고생만한 하다가 행불된 오빠를 찾는다. 옛날 용병 동료랑 칼질하게 생겼다. 감시대상이 보호대상이 되었다. 옛날에 죽은 자식들을 사술을 써서라도 살리고 싶었다. 금융 자본가랑 이공계가 싸운다.(...) 귀족들이 혁명 땜에 재산을 빼돌리고 통장에는 29만원만 남아있다 (...?) '백작님께서 보고 계셔' (...응?))
그렇기에, 이곳에서 플레이어들이 재미있게 놀고 스토리를 주도하기 위해서 캐릭터에게 '무장'시켜야 할 것은 좀더 높은 무기 실력이나 마법 아이템/필살기/주문이 아닌것 같습니다. 그 대신 갖춰야 할 것은 그런 문제들에 개입하여 나름대로 흐름을 조절하고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로서의' 주관이나 개념인듯 합니다. 성격이나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는 그 나름의 잣대로 그런저런 일들을 평가하여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상황을 바꿔나갈 동기를 만들기 쉽습니다.
그런저런 선택에 일관성이 갖춰지면 그건 거창한 체계가 없더라도 개인적이나마 나름 '철학'이나 '이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비슷한 무언가가 됩니다. 아마도 실피에나의 운명회로도 설정상 원리상 그런 인물을 자신의 '실험'에 선택하기 쉬워 보입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운명회로의 선택을 받는다는 건 실피에나의 가장 큰 '판'에서 짱먹는 길입니다. (게다가... 그런 어려운 문제에 개념있는 답을 내놓으면 운명회로가 잘했다면서 마법 아이템도 줍니다??!!!...)
따라서 그 판에서 짱먹을 것을 기대하는 캐릭터에게는 "양가감정과 사회제도의 모순과 이념적 고뇌"(?)의 싹이 될 요소를 배경설정이든 장단점에든 간단하게라도 심어두는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요소는 모험을 하며 천천히 만들어질 수도 있고 (소위 말하는 '성장 드라마'?) 모든 이의 고뇌를 짊어지겠다는 과대망상증 환자의 (영웅의?) 소질로서 처음부터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실피에나의 영웅후보들은 최소한 그런 답이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 판단하고 한마디(혹은 한칼)거들 수 있는 개성과 주관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배경세계'와 그러한 '캐릭터의 주체성'이 부대끼면서 그 교집합에서 의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게 이 배경세계를 이용해서 잘 놀기 위한 가장 눈에 띄는 요점인듯 합니다.
그건 그 자체로 '드라마'가 됩니다.
2) 판타지로서의 실피에나
실피에나의 설정들을 첫장부터 읽어내리다보면 점점 이런 생각이 들 법합니다. "윙미? 엘프녀도 마법도 마법아이템도 거의 없삼? 그걸 대체할 만한 뭔가도 없삼? 이게 무슨 판타지임? 나름대로 골칫꺼리들이 마을과 도시에 널려있고 여기 사는 사람들도 고민이 많다는 건 알아 먹겠는데, 뭔가 '하이판타지'스럽지 않은 이 분위기는 뭔감? 좀더 자세히 거들떠보니 사람을 건강음료처럼 여기는 벌레도 있고, 저마력 실피에나에서 지내들끼리만 고기반찬...아니 마법쓰는 치사빤스들도 있고, 다섯기사한테 얻어터졌다는 용도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는 인간들끼리 부대끼네. 뭔가 좀 판타지로서는 약한걸?"
... 이렇게 중얼거리며 현실세계 혹은 역사의 한장면이 언뜻언뜻 스쳐가는 설정들을 읽다 보니, 뒤로 갈수록 '실피에나의 판타지'가 뭔지 알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건 겉보기에 꽤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세계의 배후에 어떤 '작위적 의지'가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마스터의 농간 말인가?)
현실세계가 낭만적이지 못한 우연성과 구질구질함과 어중간함 사이에 애써 갖다 붙이는 의미들로서 아름답게 꾸며지다가도 드물게 '진짜' 영웅이나 전설이 만들어진다고 친다면, 이쪽은 '전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작위가 설정 내에서 구체적으로 포함되있습니다. 운명회로라던가 혹은 운명회로라던가 또는 운명회로라던가.
그러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실피에나의 많은 꺼리들이 이 컨셉에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읽혀집니다. 일단 '최종보스'의 포스를 갖춘 3대 음모집단이 그러하고, 오로라이트, 마법 아이템의 자연발생, 유적충과 유적, 꿈, 실피에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시련의 원인, 운명찾기 풍습, 칼리스토 엔진 등등...
이국적인 설정으로서 갖가지 종족과 마법과 신비함이 난무하는 볼거리, 읽을거리보다는, (그런 걸 아예 신경안 쓴 것도 아니군요) 캐릭터가 끼어들거리로서의 리얼리티가 있는 설정들의 배후에 작동하는 원리에 그러한 판타지적 작위를 배치함으로서 '현실의 반영으로서의 판타지'를 구현한 것이 실피에나의 판타지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합니다.
* 덧 : 가끔 TL3 중세와 괴리가 느껴지는 발상의 설정들이 눈에 띕니다. 이를테면 팬클럽????? 반면, 뭐... 옛날 사람들의 삶이라고 해서 무조건 여유도 없이 단순하다는 보장도 없고, 조선시대 책대여점이나 로마의 아파트 같은 걸 떠올려보면 납득이 안되는 것도 아니군요. 확실히 '진짜'세계에서 땅에 메인 농노들과 깡패같은 기사들만 가득한 서구식 중세세계는 볼품 없겠습니다. 이것도 다른 의미에서 '판타지'이려나요.
* 덧 2 : 운명회로는 고전적 의미에서 '마스터의 농간', 좀더 진보적 의미에서 '참가자들의 의지'를 설정 내에 포섭하여 체계화, 구체화, 의물화(?) 한 건지도 모릅니다.
3) 활극으로서의 실피에나
칼부림으로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실피에나는 로우파워/로우마나의 세계입니다. 책에 갖춰진 재료들을 내 칼부림 마법부림이 어떤 데이터의 작동으로 구현되느냐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화려함이 좀 떨어지는 건 사실이죠. 말하자면 '활극을 위한 활극'의 소스는 좀 모자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없진 않습니다. '까마귀 활'은 꽤 마음에 듭니다. 벩쉙의 가츠의 연사 십자궁 같습니다. 날개창도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게다가 어차피 자연 발생된 마법 아이템은 '주인공'인 니껍니다. 실피에나는 가난한 동네고 먼치킨 NPC들이 난무하지 않아서 이런 곳에서는 그런거 하나 들면 짱먹습니다. 활극에 있어서 파워의 인플레가 없다는 점은 귀차니스트에겐 큰 장점입니다. 온갖 변태적 룰 조합으로 마법콤보나 필살기를 안 만들어도 조금만 관련 부분에 CP를 들이면 활극에선 왕건이죠.)
반면, 아무 이유없는 화려한 칼춤보다 감정이입할 의미나 이유가 있는 동네싸움이 더 재미있다는 시각으로 본다면 실피에나의 드라마는 활극과 연동하기 쉽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습니다. 훌륭한 활극은 '활극을 위한 활극' 소스와 '싸울 의미'가 동시에 갖춰진 것이지만 애시당초 활극을 위한 배경 세계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보이니 지나친 욕심은 버리도록 하죠.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저는 감정이입하기 쉬운 후자가 좋습니다. 영화 '이퀄리브리엄'과 '매트릭스'는 둘다 한 뽀대하지만 싸우는 원리와 싸울 의미가 활극자체와 더 유기적으로 조화된 매트릭스의 활극이 더 가슴을 울리는 셈입니다.
... 이렇게 전제하고 실피에나의 배경 설정상의 노골적 활극거리들을 거들떠 본다면, 유적과 유적충 / 무비안 정글 게릴라전 / 안티온의 칼리스토 트롤 이야기 / 안티온과 우르고로스의 사정 / 현상금이 걸린 도망자 용병들과 남작들 / 특무 3과 / 파라고사의 언데드 / 천개의 눈 / 이름없는 독 / 쇠거미의 숲 / 등등 나름대로 갖춰져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활극 마니아를 위한 '보충'은 취미삼아 해볼 수도 있겠죠. 이런 사후 데이터 보충은 사후에 '의미'를 끼워넣는 작업보다 좀더 쉽고 편집(증?)적 재미로 해볼 수 있는 작업입니다.
2. 놀이 편의
1) 캐릭터들이 몰려다닐 이유와 이야기거리의 연계 문제
p.167~169에 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설정상 정세상 일단 나름대로 속은 곪았을지 몰라도 겉은 나름 균형이 있고 평정되어 있는 상태이니, 처음에는 미시적인 모험이라면 작은 목표의 연쇄로서 이뤄갈 수도 있습니다. 혹은 뭔가 첨부터 강조점을 주고 시작하여 '대국적인' 캠패인의 서두를 뗀다면 어디선가는 균형이 무너지는 대사건의 징조가 보이고 거기에 관련된 모험이 PC 파티가 같이 몰려다니는 장기적 목표로 설정되기 쉬울 듯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성의껏 떠먹여 준 것으로 보입니다.
2) 캐릭터 템플릿
요즘 겁스 배경세계가 다 그런지 실피에나의 서비스인지는 잘 몰라도 템플릿들이 꽤 풍부하고 친절합니다. 템플릿 내의 선택지도 쓸만합니다. 다만 템플릿의 일반성이 강해서 응용범위가 넓지만 그만큼 배경세계 고유의 특수성은 약해보여서 템플릿에 있어서는 실피에나 특유의 맛은 좀 덜 사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저는 차별성이 느껴지고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제가 쓸 서플 자료의 '특수한 전용 데이터'는 많기를 기대합니다. 반면, 제가 아이디어를 빌려올 외부 자료는 일반성이 강해서 응용해 올 내용이 많기를 기대합니다.) 로우파워 로우마나이기에 쉽게 살릴 수가 없었던 부분인지도 모르죠.
3) 아이템들, 약초, 물가 등
화려한 초상능력이 주렁주렁 달리지 않은 비전투 '일반 아이템'들도 나름대로 악센트가 있을 수 있다는 표본입니다. 역명화의 '두번째' 설정은 이야기를 자극하는 소스로서 괜찮습니다. 빠워풀한 아이템은 자기가 흥이 나서도 만들지만 여관비나 물가 같은 건 귀찮아서 만들기 싫습니다. 따라서 그런 부분은 책에 잘 만들어뒀습니다.
물자부족을 숫자로 표현한 것도 그 빈곤함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물자 인플레를 원천봉쇄하는 셈이죠.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마냥 물자에 있어서는 '빈곤의 밸런스(?)'라 할 수 있습니다.
4) 대립적 NPC/몬스터 데이터
가끔 읽기만 해도 뿌듯한 데이터가 있습니다. 무한세계 같으면 센트럼 독립요원 데이터 같은 거. 그런 식한 몬스터나 NPC의 구체적인 데이터를 보면 '아~ 이 시키들이 내 캐릭터가 맞닥뜨릴 시련들이구나'하며 뿌듯해하고 설랩니다.
유적충을 조립식으로 만든다는 개념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름없는 독이나 사르마뎁, 베르툴의 후예들, 천개의 눈 행동대원 템플릿 같은 류의 데이터가 전혀 없는 건 약간 섭섭했습니다. 그런 종류의 데이터는 그 자체로 시각적으로 세계 설정의 활극적 대립구조를 강조해주고 특수성을 살려주는 뽀대가 되는 면이 있습니다. (이런 쿨한 것들이 있는 세계군화~) 일장일단에서 버린 부분에 대한 의미없는 불평인지는 몰라도, 재미있어보이는 극적요소의 구체적 데이터는 가능하면 있는 쪽이 놀기 편하고 폼이 납니다. 마음에 안들면 알아서 바꿀 값이라도 일단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보고 싶은거죠.
3. 세세한 설정에 대한 의견
* 주의 : 여기서부턴 좀더 저 개인의 편견어린 코멘트에 가깝습니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편한대로 끄적였으니 거슬리는 부분은 통과해주세요~
1) 유적/유적충에 관하여
- 유적 : 그 정체에 관한 내막은 깊이 있고, 그와 관련하여 오래 머물면 꿈자리 뒤숭숭하고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원한다면 '고대의 공포'스러운 포스를 풍기며 크툴루 신화 냄새를 차용할 여지가 있군요.) 다만 유적들의 정체가 일관되어 있다보니, 각 지역에 흩어진 유적들을 차별화 할 수 있는 힌트는 없고 전부 비슷비슷할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안티온의 유적이나 무비안의 유적이나 우르고로스의 유적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기 쉽고, 사연들도 근처주민들이 어떻게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일 뿐 입니다. 이를 애써 차별화하려면 마스터 자체 설정을 넣어야 합니다.
'던젼'이라는 아무 생각없이 싸울 만한 필드도 필요해서 포함되긴 한듯 합니다만, 세계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실피에나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는 설정에 비해서는 지역성/특수성의 힌트가 표현되지 않는다는 건 뭔가 덜싼 느낌을 줍니다. 하나의 유적에 들어간다면 더이상 다른 유적에 들어갈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건 이 '던젼'이 설정 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실을 볼 때 적절하지 않은 건지도?
- 유적충 : 비자연적인 생물이니만큼 조립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구성이 좋습니다. 유적의 특수성에 대한 힌트가 없다면, 유적충은 그 조합을 조절해서 지역성을 만들 수는 있겠죠. 뭉치면 '악의'스러운 유사지능이 생긴다는 설정도 괜찮고, 그게 '원한'과 관련있다는 설정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다만 유적의 은근히 무서운 분위기에 비해서 유적충은 뭔가 '저그'스러운 물리적인 데이터 중심인데, 이왕 운명회로나 악의나 인간의 영혼과 관련있는 호러몬스터로 자리메김한다면 뭔가 맹수같은 물리력과는 다른 방향에서 괴담이 될만한 능력을 pool에 추가해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그들을 많이 죽인다면 꿈자리가 뒤숭숭해지면서 [악몽] [불운]이 일시적/영구적으로 생긴다던가.(뭔가를 약으로 쓰려고 많이 잡아먹으면 꿈에서 해꼬지 한다는 내용의 괴담은 옛날부터 종종 있습니다.) 무슨 심리테스트 마냥 무엇으로도 해석되는 준마법적 등무늬 때문에 보는 사람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여 그 자리에서 [플래시 백]같은 단점이 일시적으로 발생한다던가. 다수의 개체가 뭉쳐서 저주를 걸면 운명에게 버림받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존재 자체가 서서히 잊혀지는 안티 카리스마(?) 저주라던가, 유적이 주는 정신이상의 속성판 저주를 준다던가...
좀더 혐오스러운 쪽이라면 척수나 뇌에 기생해서 숙주를 좀비처럼 조종하는 초소형 유적충이라던가, 몰래 기생한 다음에 특정 단점을 부각시켜서 자신들의 번식에 쓰거나 운명에 관련된 어떤 집착을 부여한다던가... (써놓고 보니 화산의 사도가 있었군요. 근데 유적충 데이터에는 없네요.) 게다가 인간의 악의가 구체화 됬다는 설정을 부각하면 그게 꼭 '식욕'과 '폭력성'을 부각하는 쪽으로만 집중될 필요도 없군요. (쿨럭) 위험한 이야기 나오기 전에 여기까지.
http://session.new21.net/bbs/view.php?id=choice&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3
2) 마법아이템의 자연발생
'운명'이라는 테마에 일관성 있기 부합하려면 그 능력도 좀더 소유자의 개성이나 운명과 연관된 부분이나 설명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더 일관적인 뽀대가 났을지도 모르겠습닏. 발생 원인같은 설정 자체는 실피에나답고 운치 있습니다. 운명의 시험에서 "난세에 필요한 사람은 '추진력'있고 '능력'있고 타이로스 대운하 공사도 척척 해내는 CEO야~(응?)"이라고 선택했다면 생기는 마법 아이템은 '하루에 만삽뜨는 마법의 삽'이라는 식(...)... 아니... 이건 좀 직구스러우니, 당장은 의미가 분명하지 않지만 미래에 닥칠 운명이나 그의 본질을 표현해주는 능력이 은유적으로 생길 수도 있겠죠.
3) 미연시적 관점?
- 브라콘은 보통 미녀 아닌감??? =_=;; (p.27) 사연은 좋은데 저의 외모 편견땜에 감정이입이 안됩니다. 그래도 저는 현실에선 안그래요. =_=;; 단지 '판타지'라서 그럴뿐.
- 어디서 본듯한 수행오덕후 수면후유증+다혈질 콤보 전투 미녀...... 좋군요. (p.89) 미'소'녀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나 오덕 취향을 넣을 필요는 없겠지요. 어차피 개별 캠패인에 들어가면 소소한 설정의 수정은 마스터의 재량이 닿는 영역입니다.
- 소제목이랑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왠지 NPC 중 '힘있는 정치적인 리더'에 여자가 많은 느낌입니다. 옛날에 에르나 사가라는 판타지 만화가 있었는데 거기에 어느 왕국에 한 남자전사가 싸움터에 나온 여전사를 비웃으며 한마디 했죠. '여자들은 정치같은 골치아픈 것에 신경쓰면 되는거야. 감히 남자들의 전장에 발을 들이다니!!'... 미묘하게 성차별이 아닌 듯한 신선한 충격이 있었습니다.
4) 용병
아쉽게스리 내전시대는 끝나고 길드타운 공성전 종료후 용병단들은 흩어졌기에 현재 실피에나의 '현재'에서 용병단의 로망은 끝났군요. 그러나 갖가지 전투 특기를 가진 '어제의 용사들'은 종종 있겠습니다. 아직도 전쟁의 쾌감을 못잊은... 진부하지만 꼭 나오는 부적응자나, 현상범이 되어 숨어사는 용병들로 '악당의 pool'을 늘리면 대충 사무라이 영화나 서부극 비스무레한 활극의 모양이 나오겠군요. 옛 용병 연줄을 이용해서 운하전쟁을 다시 일으키려는 무기상인 같은 언급도 지나가듯 잠깐 나오기도 했고...
전란의 시대는 끝났으니 역날검을 들고 나그네라고 하며 돌아다니던가, 킬빌마냥 딸내미 잘키우며 살다가 추적자가 오자 딸이 안보는데서 사투를 벌이려고 둘이서 용을 쓰던가, 현상금이 걸려서 화산암 투성이인 우르고로스에 도망가서 산적 떼로 몰려다니며 모히칸 머리를 하고 철퇴를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괴성을 지르며 곡물과 마을처녀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면 되겠죠.(...) 안티온에서 [무기의 달인]이 있는 크로마르크 무적의 암살권 XXX대 전승자이자 세기말 구세주가 내려올 때까지가 유통기한입니다.
5) 안티온
칼리스토의 트롤은 뭔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에서 잘나오는 사이비 방사능 중독 돌연변이의 느낌이 납니다. 좀비처럼 전염도 되는 것 같고... 사실상의 좀비물일지도. 안티온은 그 독립된 공간 자체가 재난물 내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의 분위기를 풍기네요. 자립촌들 사이에 현상범과 도적과 도망자들이 득실대는 우르고로스와 비슷하지만 좀더 재난물 특유의 '고립감'을 줍니다.
6) 언데드
'원한'으로 만들어진 언데드가 좀비나, 해골, 와이트 같은 익숙한 종류라는 점은 약간 아쉽습니다. 그래서 전설의 고향 삘로 '개별적 원한'을 가진 '고유한 언데드'들을 유적충 조립하듯 그런 구성으로 만들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각각의 '동네괴담'을 만들 수 있는 특수성을 가진 언데드 랄까요. 그래야 대끔 쳐없애야 한다는 마음이 앞설뿐 무서워하는 롤플레잉이나 감정이입이 잘 안되는 양산형 언데드보단 걔네가 죽지못하는 '원한'의 내용에도 좀 관심이 갈려나 말려나. (도망다니기 바쁘다고?)
1) 드라마 '꺼리'로서의 실피에나
배경세계에는 그 시스템에 적합한 놀이거리를 제공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투 비중이 큰 시스템에 적합한 배경세계에서는, 그 곳에 산재된 문제들 속에 PC캐릭터들이 개입하려면 다채로운 전투적 선택지들을 받아줄 설정들이 담기는게 중요합니다.
거기에는 죽어 마땅한 이유와 계단형 파워레벨 구조를 갖춘 다양한 괴수, 악당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어야 합니다. 또한 빠워있는 영웅을 기다리며 보상을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미녀(남?)들이 있어야 겠죠. 먼치킨들의 쏘울을 불태울 온갖 강대하고 기상천외하며 신비한 금성철벽의 던젼, 요새, 유적들도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양가감정과 사회제도의 모순과 이념적 고뇌' 같은 건 결과적으로 칼부림으로 해결될 갈등의 배경이자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양념'으로 해두면 대체로 미장센도 충분하죠.
그럼 실피에나는?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뚜렷한 세력을 갖춘 전통적인 악의 세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실피에나를 양분하는 두 정부의 지도자들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나 일개 '성군'따위의(?) 개인적 수완이나 도덕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재난의 씨앗들이 곳곳에 산재해있습니다.
데이터가 있는 NPC들의 개인적인 사연들도 배경설정의 일부로서 이러한 거시적인 문제와 크고작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뭔가를 쳐없앤다고 깨끗하게 끝나지 않고, 누구 편을 들기도 찝찝한 문제들이 널려 있으며 정의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의 범위는 개인의 감정부터 사회구조적 문제까지 다채롭고 폭넓어 보입니다. (트롤이 우리 아버지다. 터프한 브라콘 여동생이 고생만한 하다가 행불된 오빠를 찾는다. 옛날 용병 동료랑 칼질하게 생겼다. 감시대상이 보호대상이 되었다. 옛날에 죽은 자식들을 사술을 써서라도 살리고 싶었다. 금융 자본가랑 이공계가 싸운다.(...) 귀족들이 혁명 땜에 재산을 빼돌리고 통장에는 29만원만 남아있다 (...?) '백작님께서 보고 계셔' (...응?))
그렇기에, 이곳에서 플레이어들이 재미있게 놀고 스토리를 주도하기 위해서 캐릭터에게 '무장'시켜야 할 것은 좀더 높은 무기 실력이나 마법 아이템/필살기/주문이 아닌것 같습니다. 그 대신 갖춰야 할 것은 그런 문제들에 개입하여 나름대로 흐름을 조절하고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로서의' 주관이나 개념인듯 합니다. 성격이나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는 그 나름의 잣대로 그런저런 일들을 평가하여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상황을 바꿔나갈 동기를 만들기 쉽습니다.
그런저런 선택에 일관성이 갖춰지면 그건 거창한 체계가 없더라도 개인적이나마 나름 '철학'이나 '이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비슷한 무언가가 됩니다. 아마도 실피에나의 운명회로도 설정상 원리상 그런 인물을 자신의 '실험'에 선택하기 쉬워 보입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운명회로의 선택을 받는다는 건 실피에나의 가장 큰 '판'에서 짱먹는 길입니다. (게다가... 그런 어려운 문제에 개념있는 답을 내놓으면 운명회로가 잘했다면서 마법 아이템도 줍니다??!!!...)
따라서 그 판에서 짱먹을 것을 기대하는 캐릭터에게는 "양가감정과 사회제도의 모순과 이념적 고뇌"(?)의 싹이 될 요소를 배경설정이든 장단점에든 간단하게라도 심어두는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요소는 모험을 하며 천천히 만들어질 수도 있고 (소위 말하는 '성장 드라마'?) 모든 이의 고뇌를 짊어지겠다는 과대망상증 환자의 (영웅의?) 소질로서 처음부터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실피에나의 영웅후보들은 최소한 그런 답이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 판단하고 한마디(혹은 한칼)거들 수 있는 개성과 주관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배경세계'와 그러한 '캐릭터의 주체성'이 부대끼면서 그 교집합에서 의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게 이 배경세계를 이용해서 잘 놀기 위한 가장 눈에 띄는 요점인듯 합니다.
그건 그 자체로 '드라마'가 됩니다.
2) 판타지로서의 실피에나
실피에나의 설정들을 첫장부터 읽어내리다보면 점점 이런 생각이 들 법합니다. "윙미? 엘프녀도 마법도 마법아이템도 거의 없삼? 그걸 대체할 만한 뭔가도 없삼? 이게 무슨 판타지임? 나름대로 골칫꺼리들이 마을과 도시에 널려있고 여기 사는 사람들도 고민이 많다는 건 알아 먹겠는데, 뭔가 '하이판타지'스럽지 않은 이 분위기는 뭔감? 좀더 자세히 거들떠보니 사람을 건강음료처럼 여기는 벌레도 있고, 저마력 실피에나에서 지내들끼리만 고기반찬...아니 마법쓰는 치사빤스들도 있고, 다섯기사한테 얻어터졌다는 용도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는 인간들끼리 부대끼네. 뭔가 좀 판타지로서는 약한걸?"
... 이렇게 중얼거리며 현실세계 혹은 역사의 한장면이 언뜻언뜻 스쳐가는 설정들을 읽다 보니, 뒤로 갈수록 '실피에나의 판타지'가 뭔지 알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건 겉보기에 꽤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세계의 배후에 어떤 '작위적 의지'가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마스터의 농간 말인가?)
현실세계가 낭만적이지 못한 우연성과 구질구질함과 어중간함 사이에 애써 갖다 붙이는 의미들로서 아름답게 꾸며지다가도 드물게 '진짜' 영웅이나 전설이 만들어진다고 친다면, 이쪽은 '전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작위가 설정 내에서 구체적으로 포함되있습니다. 운명회로라던가 혹은 운명회로라던가 또는 운명회로라던가.
그러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실피에나의 많은 꺼리들이 이 컨셉에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읽혀집니다. 일단 '최종보스'의 포스를 갖춘 3대 음모집단이 그러하고, 오로라이트, 마법 아이템의 자연발생, 유적충과 유적, 꿈, 실피에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시련의 원인, 운명찾기 풍습, 칼리스토 엔진 등등...
이국적인 설정으로서 갖가지 종족과 마법과 신비함이 난무하는 볼거리, 읽을거리보다는, (그런 걸 아예 신경안 쓴 것도 아니군요) 캐릭터가 끼어들거리로서의 리얼리티가 있는 설정들의 배후에 작동하는 원리에 그러한 판타지적 작위를 배치함으로서 '현실의 반영으로서의 판타지'를 구현한 것이 실피에나의 판타지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합니다.
* 덧 : 가끔 TL3 중세와 괴리가 느껴지는 발상의 설정들이 눈에 띕니다. 이를테면 팬클럽????? 반면, 뭐... 옛날 사람들의 삶이라고 해서 무조건 여유도 없이 단순하다는 보장도 없고, 조선시대 책대여점이나 로마의 아파트 같은 걸 떠올려보면 납득이 안되는 것도 아니군요. 확실히 '진짜'세계에서 땅에 메인 농노들과 깡패같은 기사들만 가득한 서구식 중세세계는 볼품 없겠습니다. 이것도 다른 의미에서 '판타지'이려나요.
* 덧 2 : 운명회로는 고전적 의미에서 '마스터의 농간', 좀더 진보적 의미에서 '참가자들의 의지'를 설정 내에 포섭하여 체계화, 구체화, 의물화(?) 한 건지도 모릅니다.
3) 활극으로서의 실피에나
칼부림으로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실피에나는 로우파워/로우마나의 세계입니다. 책에 갖춰진 재료들을 내 칼부림 마법부림이 어떤 데이터의 작동으로 구현되느냐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화려함이 좀 떨어지는 건 사실이죠. 말하자면 '활극을 위한 활극'의 소스는 좀 모자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없진 않습니다. '까마귀 활'은 꽤 마음에 듭니다. 벩쉙의 가츠의 연사 십자궁 같습니다. 날개창도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게다가 어차피 자연 발생된 마법 아이템은 '주인공'인 니껍니다. 실피에나는 가난한 동네고 먼치킨 NPC들이 난무하지 않아서 이런 곳에서는 그런거 하나 들면 짱먹습니다. 활극에 있어서 파워의 인플레가 없다는 점은 귀차니스트에겐 큰 장점입니다. 온갖 변태적 룰 조합으로 마법콤보나 필살기를 안 만들어도 조금만 관련 부분에 CP를 들이면 활극에선 왕건이죠.)
반면, 아무 이유없는 화려한 칼춤보다 감정이입할 의미나 이유가 있는 동네싸움이 더 재미있다는 시각으로 본다면 실피에나의 드라마는 활극과 연동하기 쉽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습니다. 훌륭한 활극은 '활극을 위한 활극' 소스와 '싸울 의미'가 동시에 갖춰진 것이지만 애시당초 활극을 위한 배경 세계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보이니 지나친 욕심은 버리도록 하죠.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저는 감정이입하기 쉬운 후자가 좋습니다. 영화 '이퀄리브리엄'과 '매트릭스'는 둘다 한 뽀대하지만 싸우는 원리와 싸울 의미가 활극자체와 더 유기적으로 조화된 매트릭스의 활극이 더 가슴을 울리는 셈입니다.
... 이렇게 전제하고 실피에나의 배경 설정상의 노골적 활극거리들을 거들떠 본다면, 유적과 유적충 / 무비안 정글 게릴라전 / 안티온의 칼리스토 트롤 이야기 / 안티온과 우르고로스의 사정 / 현상금이 걸린 도망자 용병들과 남작들 / 특무 3과 / 파라고사의 언데드 / 천개의 눈 / 이름없는 독 / 쇠거미의 숲 / 등등 나름대로 갖춰져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활극 마니아를 위한 '보충'은 취미삼아 해볼 수도 있겠죠. 이런 사후 데이터 보충은 사후에 '의미'를 끼워넣는 작업보다 좀더 쉽고 편집(증?)적 재미로 해볼 수 있는 작업입니다.
2. 놀이 편의
1) 캐릭터들이 몰려다닐 이유와 이야기거리의 연계 문제
p.167~169에 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설정상 정세상 일단 나름대로 속은 곪았을지 몰라도 겉은 나름 균형이 있고 평정되어 있는 상태이니, 처음에는 미시적인 모험이라면 작은 목표의 연쇄로서 이뤄갈 수도 있습니다. 혹은 뭔가 첨부터 강조점을 주고 시작하여 '대국적인' 캠패인의 서두를 뗀다면 어디선가는 균형이 무너지는 대사건의 징조가 보이고 거기에 관련된 모험이 PC 파티가 같이 몰려다니는 장기적 목표로 설정되기 쉬울 듯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성의껏 떠먹여 준 것으로 보입니다.
2) 캐릭터 템플릿
요즘 겁스 배경세계가 다 그런지 실피에나의 서비스인지는 잘 몰라도 템플릿들이 꽤 풍부하고 친절합니다. 템플릿 내의 선택지도 쓸만합니다. 다만 템플릿의 일반성이 강해서 응용범위가 넓지만 그만큼 배경세계 고유의 특수성은 약해보여서 템플릿에 있어서는 실피에나 특유의 맛은 좀 덜 사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저는 차별성이 느껴지고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제가 쓸 서플 자료의 '특수한 전용 데이터'는 많기를 기대합니다. 반면, 제가 아이디어를 빌려올 외부 자료는 일반성이 강해서 응용해 올 내용이 많기를 기대합니다.) 로우파워 로우마나이기에 쉽게 살릴 수가 없었던 부분인지도 모르죠.
3) 아이템들, 약초, 물가 등
화려한 초상능력이 주렁주렁 달리지 않은 비전투 '일반 아이템'들도 나름대로 악센트가 있을 수 있다는 표본입니다. 역명화의 '두번째' 설정은 이야기를 자극하는 소스로서 괜찮습니다. 빠워풀한 아이템은 자기가 흥이 나서도 만들지만 여관비나 물가 같은 건 귀찮아서 만들기 싫습니다. 따라서 그런 부분은 책에 잘 만들어뒀습니다.
물자부족을 숫자로 표현한 것도 그 빈곤함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물자 인플레를 원천봉쇄하는 셈이죠.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마냥 물자에 있어서는 '빈곤의 밸런스(?)'라 할 수 있습니다.
4) 대립적 NPC/몬스터 데이터
가끔 읽기만 해도 뿌듯한 데이터가 있습니다. 무한세계 같으면 센트럼 독립요원 데이터 같은 거. 그런 식한 몬스터나 NPC의 구체적인 데이터를 보면 '아~ 이 시키들이 내 캐릭터가 맞닥뜨릴 시련들이구나'하며 뿌듯해하고 설랩니다.
유적충을 조립식으로 만든다는 개념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름없는 독이나 사르마뎁, 베르툴의 후예들, 천개의 눈 행동대원 템플릿 같은 류의 데이터가 전혀 없는 건 약간 섭섭했습니다. 그런 종류의 데이터는 그 자체로 시각적으로 세계 설정의 활극적 대립구조를 강조해주고 특수성을 살려주는 뽀대가 되는 면이 있습니다. (이런 쿨한 것들이 있는 세계군화~) 일장일단에서 버린 부분에 대한 의미없는 불평인지는 몰라도, 재미있어보이는 극적요소의 구체적 데이터는 가능하면 있는 쪽이 놀기 편하고 폼이 납니다. 마음에 안들면 알아서 바꿀 값이라도 일단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보고 싶은거죠.
3. 세세한 설정에 대한 의견
* 주의 : 여기서부턴 좀더 저 개인의 편견어린 코멘트에 가깝습니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편한대로 끄적였으니 거슬리는 부분은 통과해주세요~
1) 유적/유적충에 관하여
- 유적 : 그 정체에 관한 내막은 깊이 있고, 그와 관련하여 오래 머물면 꿈자리 뒤숭숭하고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원한다면 '고대의 공포'스러운 포스를 풍기며 크툴루 신화 냄새를 차용할 여지가 있군요.) 다만 유적들의 정체가 일관되어 있다보니, 각 지역에 흩어진 유적들을 차별화 할 수 있는 힌트는 없고 전부 비슷비슷할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안티온의 유적이나 무비안의 유적이나 우르고로스의 유적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기 쉽고, 사연들도 근처주민들이 어떻게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일 뿐 입니다. 이를 애써 차별화하려면 마스터 자체 설정을 넣어야 합니다.
'던젼'이라는 아무 생각없이 싸울 만한 필드도 필요해서 포함되긴 한듯 합니다만, 세계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실피에나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는 설정에 비해서는 지역성/특수성의 힌트가 표현되지 않는다는 건 뭔가 덜싼 느낌을 줍니다. 하나의 유적에 들어간다면 더이상 다른 유적에 들어갈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건 이 '던젼'이 설정 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실을 볼 때 적절하지 않은 건지도?
- 유적충 : 비자연적인 생물이니만큼 조립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구성이 좋습니다. 유적의 특수성에 대한 힌트가 없다면, 유적충은 그 조합을 조절해서 지역성을 만들 수는 있겠죠. 뭉치면 '악의'스러운 유사지능이 생긴다는 설정도 괜찮고, 그게 '원한'과 관련있다는 설정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다만 유적의 은근히 무서운 분위기에 비해서 유적충은 뭔가 '저그'스러운 물리적인 데이터 중심인데, 이왕 운명회로나 악의나 인간의 영혼과 관련있는 호러몬스터로 자리메김한다면 뭔가 맹수같은 물리력과는 다른 방향에서 괴담이 될만한 능력을 pool에 추가해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그들을 많이 죽인다면 꿈자리가 뒤숭숭해지면서 [악몽] [불운]이 일시적/영구적으로 생긴다던가.(뭔가를 약으로 쓰려고 많이 잡아먹으면 꿈에서 해꼬지 한다는 내용의 괴담은 옛날부터 종종 있습니다.) 무슨 심리테스트 마냥 무엇으로도 해석되는 준마법적 등무늬 때문에 보는 사람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여 그 자리에서 [플래시 백]같은 단점이 일시적으로 발생한다던가. 다수의 개체가 뭉쳐서 저주를 걸면 운명에게 버림받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존재 자체가 서서히 잊혀지는 안티 카리스마(?) 저주라던가, 유적이 주는 정신이상의 속성판 저주를 준다던가...
좀더 혐오스러운 쪽이라면 척수나 뇌에 기생해서 숙주를 좀비처럼 조종하는 초소형 유적충이라던가, 몰래 기생한 다음에 특정 단점을 부각시켜서 자신들의 번식에 쓰거나 운명에 관련된 어떤 집착을 부여한다던가... (써놓고 보니 화산의 사도가 있었군요. 근데 유적충 데이터에는 없네요.) 게다가 인간의 악의가 구체화 됬다는 설정을 부각하면 그게 꼭 '식욕'과 '폭력성'을 부각하는 쪽으로만 집중될 필요도 없군요. (쿨럭) 위험한 이야기 나오기 전에 여기까지.
http://session.new21.net/bbs/view.php?id=choice&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3
2) 마법아이템의 자연발생
'운명'이라는 테마에 일관성 있기 부합하려면 그 능력도 좀더 소유자의 개성이나 운명과 연관된 부분이나 설명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더 일관적인 뽀대가 났을지도 모르겠습닏. 발생 원인같은 설정 자체는 실피에나답고 운치 있습니다. 운명의 시험에서 "난세에 필요한 사람은 '추진력'있고 '능력'있고 타이로스 대운하 공사도 척척 해내는 CEO야~(응?)"이라고 선택했다면 생기는 마법 아이템은 '하루에 만삽뜨는 마법의 삽'이라는 식(...)... 아니... 이건 좀 직구스러우니, 당장은 의미가 분명하지 않지만 미래에 닥칠 운명이나 그의 본질을 표현해주는 능력이 은유적으로 생길 수도 있겠죠.
3) 미연시적 관점?
- 브라콘은 보통 미녀 아닌감??? =_=;; (p.27) 사연은 좋은데 저의 외모 편견땜에 감정이입이 안됩니다. 그래도 저는 현실에선 안그래요. =_=;; 단지 '판타지'라서 그럴뿐.
- 어디서 본듯한 수행오덕후 수면후유증+다혈질 콤보 전투 미녀...... 좋군요. (p.89) 미'소'녀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나 오덕 취향을 넣을 필요는 없겠지요. 어차피 개별 캠패인에 들어가면 소소한 설정의 수정은 마스터의 재량이 닿는 영역입니다.
- 소제목이랑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왠지 NPC 중 '힘있는 정치적인 리더'에 여자가 많은 느낌입니다. 옛날에 에르나 사가라는 판타지 만화가 있었는데 거기에 어느 왕국에 한 남자전사가 싸움터에 나온 여전사를 비웃으며 한마디 했죠. '여자들은 정치같은 골치아픈 것에 신경쓰면 되는거야. 감히 남자들의 전장에 발을 들이다니!!'... 미묘하게 성차별이 아닌 듯한 신선한 충격이 있었습니다.
4) 용병
아쉽게스리 내전시대는 끝나고 길드타운 공성전 종료후 용병단들은 흩어졌기에 현재 실피에나의 '현재'에서 용병단의 로망은 끝났군요. 그러나 갖가지 전투 특기를 가진 '어제의 용사들'은 종종 있겠습니다. 아직도 전쟁의 쾌감을 못잊은... 진부하지만 꼭 나오는 부적응자나, 현상범이 되어 숨어사는 용병들로 '악당의 pool'을 늘리면 대충 사무라이 영화나 서부극 비스무레한 활극의 모양이 나오겠군요. 옛 용병 연줄을 이용해서 운하전쟁을 다시 일으키려는 무기상인 같은 언급도 지나가듯 잠깐 나오기도 했고...
전란의 시대는 끝났으니 역날검을 들고 나그네라고 하며 돌아다니던가, 킬빌마냥 딸내미 잘키우며 살다가 추적자가 오자 딸이 안보는데서 사투를 벌이려고 둘이서 용을 쓰던가, 현상금이 걸려서 화산암 투성이인 우르고로스에 도망가서 산적 떼로 몰려다니며 모히칸 머리를 하고 철퇴를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괴성을 지르며 곡물과 마을처녀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면 되겠죠.(...) 안티온에서 [무기의 달인]이 있는 크로마르크 무적의 암살권 XXX대 전승자이자 세기말 구세주가 내려올 때까지가 유통기한입니다.
5) 안티온
칼리스토의 트롤은 뭔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에서 잘나오는 사이비 방사능 중독 돌연변이의 느낌이 납니다. 좀비처럼 전염도 되는 것 같고... 사실상의 좀비물일지도. 안티온은 그 독립된 공간 자체가 재난물 내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의 분위기를 풍기네요. 자립촌들 사이에 현상범과 도적과 도망자들이 득실대는 우르고로스와 비슷하지만 좀더 재난물 특유의 '고립감'을 줍니다.
6) 언데드
'원한'으로 만들어진 언데드가 좀비나, 해골, 와이트 같은 익숙한 종류라는 점은 약간 아쉽습니다. 그래서 전설의 고향 삘로 '개별적 원한'을 가진 '고유한 언데드'들을 유적충 조립하듯 그런 구성으로 만들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각각의 '동네괴담'을 만들 수 있는 특수성을 가진 언데드 랄까요. 그래야 대끔 쳐없애야 한다는 마음이 앞설뿐 무서워하는 롤플레잉이나 감정이입이 잘 안되는 양산형 언데드보단 걔네가 죽지못하는 '원한'의 내용에도 좀 관심이 갈려나 말려나. (도망다니기 바쁘다고?)

의도한 것은 물론 말씀하신 대로... "고전적 의미에서 '마스터의 농간', 좀더 진보적 의미에서 '참가자들의 의지'를 설정 내에 포섭하여 체계화, 구체화"하는 것이 가상세계 외적인 목적입니다. 그걸로 사소한 상황에서 (비록 남들은 몰라줘도) 영웅이 되는 길을 만드는 것이 가상세계 내적인 목적이고요. 이 의도에 맞는 과정을 제대로 거친다면... 저 메카닉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일단은 가정했습니다. 실제로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선택한 것이 눈에 보이는 "기적"을 낳는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족하다는 거지요. 즉, 저 룰은 캐릭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를 위한 것인 셈입니다.
여담을 하자면 디자인 초기에 운명회로는 저런 설정이 없었고... "억울함을 품고 죽는 영웅은 신이 된다"는 나름대로 보편적인 신화소(?)를 재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원래 실피에나는 어느 PC인가가 영웅이 되고, 그 뒤에 억울하게 죽어서 실피에나의 수호신이 되는 설정으로, "영웅 아키타입"이 7개 있고, "시대정신"이 대상자를 선택하고 시험에 들게 하여 결과적으로 그 중 하나가 신이 되면서 실피에나의 미래가 정해진다는 식이었는데... PC들 중 하나만 딱 찍어서 저거 시키기도 뭐하고, PC들이 각각 아키타입에 속해 있다가 막판에 서로 경쟁하는 것도 실제 플레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지금과 같이 느슨한 형태로 바꾸었습니다. 덕분에 회로 관련된 설정들도 더 다양화할 수 있었죠.
유적충은 원래 다른 차원에서 오로라이트를 노리고 온 침략종족이라는 설정이었지만 이것도 회로의 설정과 함께 바뀌었습니다. 당시 설정 상 제약으로 작용했던 몇 가지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네요. 여튼 "수수께끼의 괴물"이고, 함의야 어떻건 일단은 큰 고민 없이 싸울 수 있는 적이라는 것이 포인트이니, 플레이의 필요에 따라 적당히 바꾸는 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
활극의 빈약함은 사실 고민을 좀 했습니다. "마음 편한 폭력은 유적충을 상대할 때 외에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단 기본 개념이었는데... 사실 여기 굉장히 폭력적인 세상이거든요 --; 옵션이 많아서 전투 자체가 화려해지면 마음이 딴 데 쏠릴 것 같았습니다. 폭력은 "어떻게"보다 "왜"가 더 중요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폭력의 "도구"를 제한하는 것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궁색하네요 ^^
언데드에 관해서는 동감입니다. 최소한 "혁명좀비" 같은 이름이라도 붙이고 적절한 특성을 몇 개 더하기만 했어도 더 맛이 살지 않았을까 싶군요.
안티온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얘기할 때 "북두의 권 상태"라는 말도 자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