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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스터의 사전 준비
앞서 말했듯, 마스터를 하겠다고 나서면 RPG 입문도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마스터링으로 RPG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의 요령을 우선 설명하겠습니다. 플레이어로 시작할 생각이라도 미리 읽어 두면 나중에 마스터링을 할 때 도움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마스터가 어떤 과정으로 플레이를 준비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A. 룰의 숙지
GURPS 국문2판 경량판은 캐릭터를 만드는 룰, 그리고 플레이의 진행에 사용되는 룰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단 한 번 훑어 읽어 둡니다. 욀 필요도 없고, 너무 깊이 팔 필요도 없습니다. 룰이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감을 잡으면 충분합니다. 캐릭터는 어떤 요소로 구성되고, 책자에 있는 룰이 어떤 상황을 다루는지 정도만 대충 파악하십시오.
그리고 캐릭터를 두 명, 각각 100CP 정도로 만들어 보고, 진행에 사용되는 룰을 실제로 시험해 보십시오. 특히 전투 룰은 복잡하면서도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연습을 미리 해 두면 나중에 편합니다. 단지 이것이 RPG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잊지 마십시오. 그저 룰을 사용하는 연습일 뿐입니다. 실제 플레이에서는 룰을 쓰는 것 말고도 하는 일이 많습니다.
B. 시나리오의 제작
여기서는 “시나리오”를 만드는 법을 설명하겠습니다. 시나리오는 말하자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짜 놓은 플레이의 “단기 계획서” 같은 것입니다.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거나 시중에서 판매된 시나리오는 짧은 것도 상당히 분량이 많습니다. 이것은 보고 따라 하려는 사람을 위한 배려이지, 자기가 직접 사용할 시나리오를 그렇게 자세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RPG에 어느 정도 숙달되면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고도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초보 마스터인 만큼, 플레이 도중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지경에 달하지 않을 정도로는 준비를 합시다.
단계 1: 줄거리를 구상한다
대충 어떤 이야기가 될 것인지 생각합니다. 용에게 납치 당한 공주를 구하러 가도 좋고, 산적이 지키는 보물을 빼앗으러 가도 좋습니다. RPG로 할 수 있는 이야기에는 거의 제한이 없습니다. 단, 처음에 할 때에는 꼬일 여지가 적은 단순한 줄거리가 좋습니다. 우선은 한 문장으로 설명이 되는 줄거리를 만드십시오.
* 세계 설정은 거의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거창한 설정은 플레이어들에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앞뒤가 맞게 꾸미기도 어렵고, 실제 플레이에서 사용되는 부분은 적습니다. 나중에 장기 플레이를 할 때에는 필요한 작업이지만, 지금은 아주 간단하게만 합니다. 예를 들어 산적이 지키는 보물을 찾으러 가는 주인공들의 모험이라고 합시다. 산이 있고, 산적의 소굴이 있고, 마을이 있으면 그걸로 족합니다. 여기에 “서양 중세풍”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분위기만 잡으면 일단은 족합니다.
단계 2: 장면으로 나눈다
하나의 시나리오는 몇 개의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장면의 개수에는 대중이 없지만, 여기서는 6개로 나누기로 합니다. 장면 하나 하나를 나누는 와중에도 이야기가 부풀어오릅니다. 각 장면을 어떻게 구성할지 설명한 후, 산적이 지키는 보물을 찾으러 간다는 내용으로 예를 들겠습니다.
장면 1: 주인공들에게 처리해야 할 문제가 주어집니다. 상관이 나타나서 임무를 주어도 좋고, 주인공들이 주변 상황을 보고 “이렇게 하자”고 스스로 결정해도 좋습니다. 보수를 교섭한다거나 하는 것도 여기 들어갑니다. 주인공들에게 그 문제를 처리하러 나설 이유가 있는 편이 좋지만, 플레이어들의 양해를 구하고 그냥 내켜서 한다는 식으로 해도 됩니다. 첫 장면은 마스터도 플레이어도 그 플레이의 분위기에 젖을 수 있도록 "색깔"을 잘 내는 것이 좋습니다. 이 장면에서만큼은 주변 묘사를 아끼지 말고, 그 세계의 특징적 요소들이 있는 경우 적절한 것을 몇 가지 등장시키십시오.
예 1: 산적이 마을에서 빼앗아간 풍작의 부적을 되찾아 오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주겠다는 방이 붙었고, 이를 읽은 주인공들이 부적을 찾으러 가기로 합니다.
장면 2: 주인공들이 문제의 해결에 착수합니다. 길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고, 도구나 무장을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본격적인 사건 해결에 들어가기 전 단계이므로, 주인공들을 비롯하여 중요한 캐릭터들 사이의 대화라거나 하는 것을 담기에도 좋은 장면입니다. 약간 복잡하게 하고 싶으면 해결해야 할 문제에 추가로 사정을 넣어 보십시오.
예 2: 주인공들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여행 채비를 합니다. 식량값을 흥정하는 도중, 산적의 보물을 찾으러 간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처녀가 찾아와 자기 오빠가 산적에게 잡혀 갔으니 구출해 달라고 합니다.
장면 3: 주인공들이 첫 번째 난관에 봉착합니다. 전투나 기타 액션을 넣으십시오. 주인공들이 습격을 당한다거나, 미행을 눈치채고 쫓아간다거나, 관계 없어 보이는 싸움에 휘말린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상황이 끝나면 처음에 제기된 문제에 관하여 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됩니다.
예 3: 마을을 떠나 야영을 하는 주인공들을 한 떼의 산적들이 습격합니다. 물리치고 심문해 보니 이미 산적들은 마을의 첩자를 통해 토벌대가 출발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졸개에 지나지 않아 그게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첩자의 정체를 밝혀내려면 어차피 산적 소굴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장면 4: 문제의 해결이 가까워 옵니다.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이 장면의 목적입니다. 앞에서 한 번 액션이 있었고 장면 5에서 또 싸움이 일어날 예정이니 뭔가 다른 것을 배치해 봅시다.
예 4: 주인공들이 산적의 본거지에 잠입합니다. 보초를 제거하고 조용히 들어가는 데서 시작하고, 산적 소굴 내부에 감금된 마을 처녀의 오빠를 발견합니다. 풍작의 부적은 산적 두목이 목에 걸고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장면 5: 큰 싸움을 통해 문제가 해결됩니다.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지요.
예 5: 풍작의 부적을 목에 건 산적 두목을 발견합니다. 장면 2의 마을 처녀가 인질로 잡힌 오빠 때문에 할 수 없이 산적의 첩자 노릇을 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산적 두목과 싸웁니다.
장면 6: 마무리입니다. 5에서 해결되지 않고 남은 작은 문제들이 여기서 해결됩니다.
예 6: 주인공들은 촌장에게 부적을 넘겨주고 돈을 받습니다. 마을 처녀에게 산적을 도운 죄를 물을 것인지는 주인공들이 결정할 몫입니다.
새 장면을 시작할 때에는 그 장면의 배경이 되는 장소의 풍경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방금 벤 것 같은 풀 냄새" 이런 감각적 요소들을 시나리오에 적어 놓고 실제 플레이에서 활용하면 준비하기도 사용하기도 편합니다.
단계 3: 세부를 만든다.
이렇게 틀을 짜놓은 뒤에는 각 장면에 필요한 데이터를 준비하면 됩니다. 적 NPC의 수치라거나, 그 장면에서 해야 하는 일들의 난이도라거나, 특정 장면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의 수치라거나 하는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적 NPC는 완전히 시트를 만들어 뽑지 않아도 됩니다. ST, DX, IQ, HT, 속력, 이동력, 명중 판정 수치, 파괴력과 피해 유형, 방어 수치(피하기/막기/받아내기)만 정하십시오. 그 NPC가 특별히 뭔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에 관련된 기능을 주면 됩니다. 익숙해지면 즉석에서 척척 할 수 있지만, 아직은 미리 해 놓는 것이 편합니다.
해제해야 할 덫이나 넘어야 할 담 같은 것이 있으면 미리 판정 보너스나 페널티를 지정해 두어도 좋고, 상황이 닥쳤을 때 적당히 꾸며도 좋습니다. 숫자 하나만 지정하면 되니까 일일이 미리 준비해 두지 않아도 됩니다.
4단계: 주의할 점과 검토할 점
이렇게 데이터를 준비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해 꼭 물리쳐야만 하는 적이라거나 꼭 넘어야만 하는 난관, 꼭 얻어야만 하는 정보 같은 것은 가능하면 만들지 마십시오. 만들더라도 달성하기 아주 쉽게 하거나, 수틀리면 즉석에서 수치를 조정하여 주인공들이 성공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에 든 예에서, 장면 3에 등장한 산적들의 습격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플레이는 허무하게 끝납니다. 이걸 재미있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 중 최하책은 뭐가 어쨌든 주인공들이 산적들을 쓰러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주사위를 속이거나, 주인공을 도와주는 NPC를 등장시키거나 하는 것이지요. 중책은 당초에 산적들을 약하게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마스터가 준비한 내용이 그대로 실현되게 할 뿐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PC들이 뭘 하든 산적에게는 이기게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최상책은 산적들에게 지더라도 이야기가 진전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산적이 주인공들에게 이겼습니까? 그러면 죽이지 않고 포로로 붙잡아 본거지로 끌고 간다고 하십시오.
한편 RPG는 즉흥이 생명입니다. 주사위가 꼬여서, 또는 플레이어가 독특한 생각을 해 내는 바람에 장면이 생각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준비해 온 것이 그대로 펼쳐질 뿐이면 마스터 입장에서는 사실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미리 모든 것을 예상할 필요도 없고, 그럴래야 그럴 수도 없습니다. 즉석에서 생각해 내십시오. 이야기가 어떻게 진전되어야 할지 혼자 생각하기 어려우면 플레이어들에게 의견을 물어도 좋습니다.
누가 저한테 RPG 진행의 제1법칙을 묻는다면 “예측하면 빗나간다”는 것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이 또한 RPG의 특징이고 장점입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치밀하게 대비하는 것보다, 당초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괜찮은 여유를 두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만들 때에는 딱 큰 골격만 잡는 것이 좋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실제 플레이에서 생겨나야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측하면 빗나간다는 말을 했으니 말인데, 플레이어가 어떤 결정을 할 것이라고 가정한 부분이 혹시 없는지 검토해 보십시오. 빗나갈 확률이 높습니다. 마스터가 혼자 머릿속에 그린 그림과, 플레이에서 플레이어들이 각자 받아들이는 그림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처음에 “산적 무서워” 하고 내빼는 주인공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으니 플레이어에게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준비한 게 그것 밖에 없으니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십시오.
하지만 모퉁이 하나를 돌 때마다 마스터가 플레이어에게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해서야 누가 플레이어인지 모를 노릇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행동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취해도 각각 나름대로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게 하는 것은 마스터의 기량이고 팀의 실력입니다.
C. 캐릭터 만들기
이 글을 착실히 읽는 분이라면 아마 룰북도 착실히 읽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만 플레이에 오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마스터가 초보인데 숙련자 플레이어를 고집해서 모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분명히 룰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끼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탓할 수야 있지만, "플레이는 재미 없지만 내 책임은 아니다" 하는 위안을 얻을 뿐이지 플레이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 캐릭터를 미리 만들어 두면 좋습니다. 주인공 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PC라고 하는데, PC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약자인 만큼 원래는 플레이어가 만들고 맡는 것이 정석입니다. 하지만 캐릭터를 만드는 데 익숙하지 못한 사람을 붙잡고 오래 시간을 끄는 것은 모두에게 손해입니다. 따라서 예비로 캐릭터를 만들어 두는 것은 좋은 방편이 됩니다. 운이 좋아서 플레이어들 모두가 캐릭터를 척척 만들어 내더라도 헛수고가 아닙니다. 만들어둔 캐릭터는 조금 고쳐서 NPC로 쓰면 됩니다. 다음 지침은 마스터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플레이어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GURPS에서 캐릭터 만들기
GURPS의 캐릭터는 CP라 불리는 점수를 소비해서 만듭니다. 예를 들어 100CP짜리 캐릭터보다 200CP짜리 캐릭터가 100CP만큼 더 유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쓸 수 있는 방법이 하도 다양하고 캐릭터가 처할 수 있는 상황도 다양하기 때문에, CP는 캐릭터 능력의 대략적 수준의 지표가 되기는 하지만 강약을 엄밀하게 결정하는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200CP짜리 학자라면 100CP짜리 학자에 비해 훨씬 아는 것이 많겠지만, 100CP짜리 무술가에게는 뼈도 못 추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CP를 너무 높게 잡을 경우, 조심하지 않으면 캐릭터의 내적 균형이 흐트러질 우려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150CP 정도로 만드는 것을 가정하겠습니다. 판타지 RPG식으로 말하자면 "병아리 영웅" 정도에 해당되는, 보통 사람보다는 우수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정도에 해당됩니다. GURPS 경량판에 캐릭터를 만드는 법은 다 나와 있으니 여기서는 처음에 갈피를 잡기 어려울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충 이 정도면 적당히 괜찮은 캐릭터가 나온다는 얘기이지, 지켜야 할 규칙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변화를 주어도 좋습니다.
일단 CP 배분 요령입니다. 150CP짜리 캐릭터라고 하면 특성치에 100CP, 장점에 50CP, 단점에 -45CP, 기능에 45CP로 맞추어 보십시오.
특성치는 13 정도를 최대치로 할 것을 권합니다. 기능은 일단 목록에서 원하는 것을 11개 고르고, 여기에 CP를 먼저 다 배분한 뒤에 실력을 계산하는 것이 편합니다. 이중 특히 높은 주기능(각각 8~12CP 정도)을 2~3개, 중간 정도 되는 보조기능을 4~6개(각각 2~4CP 정도), 그리고 대충 알고만 있는 수준인 배경기능을 3~5개(각각 1~2CP) 넣습니다. 주기능은 IQ와 DX 중 보다 높은 쪽에 기반하는 것으로 고르는 것이 효율적이기도 하고 사실적이기도 합니다. 기능에 투자된 CP는 그 기능을 배우는 데 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기가 소질이 있는 분야를 더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좋은 PC는 이렇게 만든다
첫째, 좋은 캐릭터는 플레이에서 항상 뭔가 할 일이 있습니다. 설령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원하면 자기 나름대로 무엇인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함으로써 플레이에 보탬이 됩니다. 캐릭터 자신이나 다른 동료 주인공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할 줄 알아야겠지만, 보탬이 된다는 것은 그것만을 가리키는 아닙니다. 팀이 보고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좋은 캐릭터는 그 플레이어는 물론 팀 전체를 심심하게 하지 않습니다.
둘째, 아무리 유능하고 뛰어난 캐릭터라고 해도 밋밋하거나 꼴불견이면 실패입니다. 마스터가 제시하는 난관은 PC 입장에서 보면 실로 난관입니다. 하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어차피 여기에 성공해서 재미있으면 그것으로 좋고 실패해서 재미있으면 그것으로 또 좋은, 넘어야 할 장애물이라기보다 이야기의 갈림길에 가깝습니다. PC들이 꼭 통과해야 할 난관이라면 마스터가 알아서 쉽게 내줄 것입니다. 캐릭터의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양한 재미를 희생해서까지 그런 캐릭터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캐릭터의 모든 면에 관심을 갖고 만드십시오.
셋째, 좋은 캐릭터는 다른 PC와 잘 어울립니다. PC들이 잘 어울리려면 서로의 능력이 서로를 보완하고, 서로 뚜렷이 차별화가 되면서도 같이 다닐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꼭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티격태격해도 됩니다. 하지만 싸우다가 헤어지거나 하면 플레이에 불편이 일어나니 이런 것은 캐릭터 제작 단계에서 미연에 방지를 합시다.
넷째, 초기 설정을 너무 상세하게 하지 않습니다. 처음 RPG를 시작하려고 열의에 불타는 사람 중에는 머릿속에 간직한 바로 그 캐릭터를 구현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화나 영화, 소설의 주인공을 가져오는 경우가 그중 많습니다. 그러나 만화나 영화, 소설에서도 캐릭터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 모습이 형성됩니다. RPG의 캐릭터는 더더욱 플레이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미리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너무 강하면 플레이와 따로 노는 경향이 발생합니다. 캐릭터 또한 시나리오와 마찬가지로, 초기 설정이 너무 빡빡하게 되면 플레이에서 유연하게 변화할 수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단편 플레이에서는 “캐릭터가 플레이를 통해서 만들어질” 여유가 그다지 없기도 합니다. 이 경우 최선의 방법은 앞으로 일어날 플레이에 가장 어울리는 배경 스토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플레이를 시작하고 진행하다 보면 금세 새로운 면모가 떠오르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닙니다.
캐릭터 제작 지침과 템플릿
캐릭터를 통째로 만들어 두지 않더라도, 그 시나리오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나 편리한 장점 같은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서 제공하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담을 넘는 장면을 준비했는데 아무도 담을 넘을 줄 아는 캐릭터를 안 만든다고 하면 재미 없겠지요. 전투가 아주 많이 등장하는 시나리오인데 전투랑 완전히 무관한 캐릭터를 누군가가 만들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시나리오의 대부분을 아무 것도 못하면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플레이가 시작되기 전에 어떤 캐릭터가 적절하고 부적절한지 미리 생각을 해 두었다가 플레이어들에게 이야기하십시오.
GURPS에는 캐릭터에게 일부러 불리한 특성을 부여하고 CP를 받아서 다른 데 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단점”입니다. 단점은 플레이에서 발휘가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단편 플레이에서는 주된 줄거리의 진행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캐릭터 개개인의 단점이 실제로 구현될 여지를 만들기 어려운 감이 있습니다. 이 점은 캐릭터를 만들 때 확인하고, 드러나지 않을 단점이나 플레이에 방해가 될 단점은 배제합시다. 물론 캐릭터의 단점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시나리오를 재구성할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이런 지침을 캐릭터 시트의 형식으로 체계화한 것이 캐릭터 템플릿입니다. 템플릿은 사실 GURPS에 꽤 숙달되어야 제대로 만들 수 있지만, 일단 GURPS 경량판에 예는 나와 있습니다. 템플릿이 있으면 초보 플레이어도 약간의 지도만 받고 쉽게 스스로 캐릭터를 제작할 수 있으니, 여력이 되면 한 번 만들어 보십시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캐릭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서로 만드는 과정 중에 의견을 교환할 수도 있고, 캐릭터 시트를 마스터가 미리 점검하여 준비한 시나리오에 반영할 수도 있게 됩니다. 한편, 캐릭터를 각자 만들어오면 되지 왜 따로 시간을 내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GURPS에서는 나올 수 있는 캐릭터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즉석에서 만들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하십시오.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