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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단적으로 말하면, CP의 제한은 불필요합니다.
플레이에서 CP의 제한을 거는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PC들 사이에 CP 차이가 많이 날 경우, 같이 놀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만약 CP의 제한이 없어도 플레이어끼리 서로 함께 놀만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고 합시다. 이럴 때 CP의 제한이 필요할까요?
예를 들어서 만화풍 학원물을 플레이 한다고 합시다.
*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날나리.
* IQ 16의, 이미 해외의 대학을 졸업한 뒤 고교과정을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다시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는 천재 소년.
* 학교에 팬클럽이 있을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미소녀.
이 세 캐릭터의 CP는 두세배까지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 캐릭터가 같은 플레이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학원물에서 위의 세 캐릭터의 위치는 사용한 CP에 관계 없이 동등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캐릭터의 개성이니까요.
거꾸로 이러한 캠페인에서는 CP의 제한이 있을 때 보다 좋은 플레이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CP의 제한이 있다는 말은 곧 서로 CP 차이가 극단적으로 나는 캐릭터는 만들기 힘들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자신의 컨셉을 포기하거나, 컨셉을 구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단점에 CP를 사용하는 일이 흔히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함께 놀 수 있는데도요!
CP 제한은 결국 캐릭터들의 비중을 동등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한가지 장치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CP 제한이 없이도 캐릭터들은 얼마든지 동등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CP가 충분히 유의미할 다른 캠페인을 예로 들겠습니다.
흡혈귀 소녀가, 인간 사회에서 도망다니는 캠페인이 있습니다. 흡혈귀 소녀는 1천CP를 넘는 PC입니다. 그리고 다른 PC는 그 흡혈귀에 반해서 따라다니는 과정에 비일상에 발을 딛게 된, 100CP짜리 평범한 소년입니다.
이 두 캐릭터는 플레이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이 주도권을 잡는 관계가 아닙니다. (물론 소년이 소녀에게 반했으니, 캐릭터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 반한 쪽이 지기는 하겠지요.) 여기서 흡혈귀 소녀는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고, 그 흡혈귀 소녀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은 소년입니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온갖 소설에서 주인공은 강하기 때문에 사람을 도울 수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사람을 도울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주인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RPG의 PC들은 모두 주인공입니다.
물론 마스터가 이러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유도하면 좀 김이 빠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겁스에서는 이런 경우를 위한 장치 또한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스터로부터의 뇌물(p. 192) 룰을 참고하세요. CP가 적은 캐릭터가 CP가 많은 캐릭터보다 많은 플롯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준비해 주면, 소년은 정당하게 소녀를 도울 수 있습니다. 마스터의 눈에 보이는 도움이 없이도요.
물론 1번의 전제를 만족시키는 플레이를 위해서는, 마스터와 플레이어들이 서로간에 납득 가능할 때 까지 상의를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 다른 플레이를 재밌게 즐기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지요. 물론 모든 캠페인에서 이렇게 부드러운 합의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CP 제한이 사실 무의미한 캠페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컨셉에 관계없이 극단적으로 많은 CP를 쓴 먼치킨 캐릭터하고는 함께 놀기 싫겠지만, 같은 CP 제한 하에서 룰을 최대한 악용해서 태어난 컴뱃머신과도 함께 놀기 싫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 극단론에서 벗어나서 봐도, 현재 널리 쓰이는 캐릭터의 CP 제한은 다소 이상합니다.
전투가 중심이 된 캠페인이 있습니다. 이런 캠페인에서 전투에 참여할 여지가 없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소외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물론 여기도 여러가지 해결책이 있습니다. 매 세션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캐릭터를 바꾸는 방법도 그 중 하나겠지요. 하지만 캠페인을 시작할 때 '전투가 중심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깔고 시작했을 경우, 비전투 세션을 계속해서 배정해 주기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캠페인에서 제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쉬운 캐릭터는 컴뱃머신입니다. 단지 그런 캐릭터를 플레이 하고 싶지 않고,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뿐입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컨셉에 따라 전투능력에는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결국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쉬운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로 나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만약 캠페인을 이런 방향으로 제안해 보는건 어떨까요?
이 캠페인에서 전투에 관련된 특성치·장점·기능등에 쓸 수 있는 CP를 핵심 CP라고 부르고, 핵심 CP에 제한을 겁니다.
그리고 전투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특성치·장점·기능들에 쓸 수 있는 CP를 주변 CP라고 부르고, 주변 CP의 제한은 핵심 CP와 별개로 겁니다. (주변 CP의 제한을 완전히 풀되, 캐릭터의 컨셉에 맞는 - 물론 만능형은 안되겠죠? - 방향성을 확실히 따르도록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면 PC들은 서로 전투에 있어서 평등(물론 전투에 같은 CP를 썼다고, 전투에 있어 완벽히 평등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기존의 접근 방향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더욱 평등한 것은 사실입니다.)해 집니다. 그리고 서로 자신만의 다른 컨셉또한 충분히 살릴 수 있습니다. (컨셉이 컴뱃머신이 아닌 한은요!) 플레이어는 전투 상황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전투 외에서도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습니다.
CP 배분에서 겁스의 기본 논리는 무의미한 단점에는 CP를 주지 않되, 무의미한 장점에는 CP를 물린다 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약간 손보는 것으로 재밌어질 수 있는 캠페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룰북에서 제시된 내용하고 달라도 상관 없습니다. 모든 RPG 팀에서, 팀원들의 동의는 룰북보다 강력합니다. 룰북과 하우스룰이 충돌하면 하우스룰이 우선하듯이요.
CP배분 문제에 있어서는 언젠가 천승민님께서 말씀하셨던 '무밸런스의 밸런스' 요법이 간편하면서도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CP 제한을 적용합니다. PC들 사이에 능력 차이가 크면 플레이를 실제로 하기도 전에 구도가 정해지는 경향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이죠. 이게 문제가 되지 않는 캠페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저는 좀 더 가변적인 진행이 가능한 시작점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도 플레이어간의 역할이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하는걸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2번을 같이 언급했습니다. 2번은 결국 캐릭터간의 능력차이를 일반적인 CP 제한보다 더 줄이는 방법론이니까요. 모든 능력에 스포트라이트가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는 힘든 경우가 많아서, 저런식으로라도 캠페인에서 소외되기 쉬운 컨셉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줄일 수 있는 장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학사생활이 빡빡해서 겁스를 제대로 즐길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네요... 숙제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 한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여유가 생겨서, 급하게 써 내려간 글이라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언제 날지 잘 모르겠어서 특별한 퇴고는 거치지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