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에 좋은 캐릭터는 이래야 한다]


1. 좋은 캐릭터는 자기 나름의 해결해야 할 과제/갈등/목표가 있습니다.

2. 좋은 캐릭터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뚜렷한 아이덴티티/개성이 있습니다.
3a. 좋은 캐릭터는 플레이 내용에 걸맞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3b. 좋은 캐릭터는 플레이 내용에 걸맞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4. 좋은 캐릭터는 다른 동료 PC들과 어울리며 서로를 더욱 빛내줍니다.
5. 좋은 캐릭터는 플레이를 통해 변화되고 채워질 여백이 있습니다.




4. 좋은 캐릭터는 다른 동료 PC들과 어울리며 서로를 더욱 빛내줍니다.


석 달만입니다 (허.허.허;;). 이제는 연재라 부르기도 어렵겠지만, 아무튼 할 수 있는대로 마저 써가보려고 합니다. 남은 두 가지 주제는 어느 정도 문제의식은 있으면서도, 저도 아직 해법을 찾았다 하기 어려워 줄곧 미뤄진 것도 있네요. 그래도 부족한 대로 생각을 나눠보겠습니다.


대부분의 RPG 플레이는 마스터 외에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합니다. 왜 그럴까요? D&D라면 클래스별로 캐릭터가 모여야 완성된 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현실적으론 마스터가 모자라니(-_-), 한 명의 마스터에 여러 플레이어가 할당될 수 밖에 없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제한을 제쳐놓고 생각하면, 몰입도에선 1:1 플레이가 훨씬 이득이 많아보입니다. 당장 수많은 영화/만화/소설을 생각해봐도, 주인공이 한 명인 경우가 훨씬 많고 또 그 인물을 띄워주는 데는 유리합니다. 마스터는 한 주인공 PC만 신경쓰면 되니 편하고, 플레이어도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니 좋겠죠. RPG의 본질이 자신의 인물에 몰입해서 능동적인 가상체험을 하는 것이라면, 1:1 플레이가 이상적입니다. (단지 마스터 부족을 한탄할 뿐...)


그렇다면 플레이어가 2인 이상인 상황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짐일까요? 아닙니다. 참가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더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조력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자기의 리액션을 받아주고 플레이를 같이 즐길 사람도 더 늘어나고요. 캐치볼을 셋이서 하면 둘이서 주고 받을 때보다 공은 덜 만지겠지만, 그래도 더 재미있지요. 스포트라이트는 PC 간에 왔다갔다 하면서 나뉘어지겠지만, 동시에 마스터 만이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도 자기 캐릭터의 행동에 같이 주목하고 맞상대해주니까요.


따라서 RPG에서 플레이어가 여럿인 이점을 살리자면, 1) 플레이어의 아이디어/창조력이 플레이에 반영되어야 하고, 2) 서로 상대 PC에게 관심을 기울여줘야 하고, 3) 다른 PC의 상대역으로 활동해야 합니다. 각각 작가 시점, 관객 시점, 인물/배우 시점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 여기서는 주로 2)와 3), 캐릭터를 통해 이뤄지는 측면에 집중하겠습니다.



4.1. 다른 PC에 흥미를 갖고 관여해야 합니다.

먼저 관객으로서 다른 PC에 흥미를 갖고 집중해야 합니다. 천승민님이 자주 말씀하셨는데, RPG에서 하는 많은 행동선언과 연기는 결국 다른 팀원들의 리액션을 기대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캐릭터를 만들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 캐릭터를 흥미로워하고 주목해주길 바랍니다. 그 욕구를 이루는 왕도는, 자신이 동료 캐릭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입니다. 작가정신을 갖고 자기 캐릭터에만 골몰해서 어필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노력을 상대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도 기울이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캐릭터를 어필하기 원하면서 정작 다른 팀원의 캐릭터에게는 관심이 없다면, 서로 귀를 막고 소리를 질러대는 꼴입니다.

이를 위해서 서로 상대방이 흥미로워하고 공감가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할 터입니다. 이 점은 [RPG에 좋은 캐릭터는 이래야 한다] 1, 2회차(캐릭터 고유의 주제/갈등, 이해하기 쉬운 컨셉)에서 어느 정도 다루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이, 서로 상대방 캐릭터를 공감하고 관심갖기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먼저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 방법도 소용이 없습니다.

모두가 공감하고 흥미로운 캐릭터가 되려면, 자기 캐릭터를 열어놓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내 캐릭터는 내 것, 내가 상상하고 규정짓는 것이라는 집착을 접어두고, 다른 팀원들은 내 캐릭터를 어떻게 보고 이해하는지 귀기울여 보세요. 또 다른 팀원들이 이런 점이 있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캐릭터가 보다 잘 살아날 것 같다고,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점도 많을 거고요. 캐릭터에 대해 같이 생각하고 같이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히 다른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사를 캐릭터에 함께 녹여넣을 수 있습니다. 플레이를 하면서도 캐릭터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 서로 활발히 의견을 주고 받고요.

자기 캐릭터를 불가침의 영역으로 놓고 고집하는 것("AT 필드다!")은, 왕따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자기 캐릭터를 내 생각대로만 못하는게 답답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않으면 그 캐릭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서로 상대방 캐릭터에 관심갖고 관여하면, 다른 이의 캐릭터도 내 캐릭터처럼 공감하고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굳이 내 캐릭터가 나오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죠.

이렇게 캐릭터를 자기만의 것으로 고집하지 말고 공유해야 한다는 점은 앞서 많은 분들이 이야기해오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1) RPG는 서로 자기 캐릭터를 어필하고 감상하는데 재미가 있다 -> 2) 그러려면 서로 상대방 캐릭터에 관심과 흥미를 가져야 한다 -> 3) 그러려면 캐릭터 제작과 롤플레이에서 마음을 열고 생각을 주고 받아야 한다, 가 되겠습니다.


4.2. PC들끼리 부대끼며 흥미로운 면모를 끌어내야 합니다.

상대방 PC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다면, 다음은 이 점을 플레이 속에서 PC들이 서로 부대끼는 것을 통해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투 캅스처럼 "세파에 찌들고 부패한 고참"과 "순수하고 이상을 꿈꾸는 신참"이 있다면, 서로 이런 점에서 티격태격하면서 더욱 서로의 개성을 부각시켜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차갑지만 속으로는 정 많은 "츤데레" 캐릭터라면, 이 캐릭터의 츤츤거림을 받아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을 열게 할 수 있는 상대역이 필요합니다. 캐릭터가 자기 컨셉과 개성을 제대로 드러내려면, "상대역"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역이 되어줄 수 있는 인물은, PC와 NPC가 있습니다. 만일 PC가 서로의 상대역이 되어주지 않으면 NPC가 이 몫을 해줘야 하겠죠. 마스터가 일일히 각 PC의 필요에 맞춰서 상대역을 내야 한다면, 혼자서 담당하기 벅찬 짐이 되고 플레이 자체도 비효율적이 됩니다. 하지만 PC가 서로 상대역이 되어준다면,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공유하면서 서로 상대 캐릭터를 주목하고 더 깊이 이해할 기회가 됩니다.

서로 상대방 캐릭터를 이해하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두는 것이 유용합니다. 특히 '1. 좋은 캐릭터는 자기 나름의 해결해야 할 과제/갈등/목표가 있습니다'에서 언급한, 캐릭터에 내재된 갈등/주제를 같이 탐구하면 좋습니다. 그저 캐릭터의 외면, 성격을 얄팍하게 다루는 데 그치지 말고, 캐릭터가 품은 갈등, 트라우마, 약점 등 깊이 있는 면모가 드러나올 때 더욱 재미있는 플레이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면모를 바탕으로 캐릭터가 서로 부딪쳐가며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플레이를 통해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새롭게 드러나고 변해가는 것이야말로 RPG의 참맛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캐릭터가 더이상 생동감 있는 인물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유닛에 피상적인 인격을 덧씌운 인형처럼 느껴진 적 없습니까? 아마도 캐릭터가 깊이있는 인물로서 이해받고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RPG를 여럿이 하는 이유는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제 캐릭터를 공공의 것으로 함께 열어두고, 서로 관심 갖고, 다같이 파고들며 살려내는 것이 어떨까요?

솔직히 말해 이미 모두가 알고 있고 Session에서도 여러 차례 이야기된 것을 다시 정리한 것 뿐인 듯 싶네요^^ (특히 승민님 블로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거의 방향을 잡은듯...). 원론적인 이야기가 많이 되었는데, 보다 실제적인 테크닉이 있으면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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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좋은 캐릭터는 플레이를 통해 변화되고 채워질 여백이 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